요즘 저는 하루 세끼 중에서 제일 신중해지는 순간이 바로 ‘국’을 고를 때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밥상에 뭐가 올라오든 대충 떠먹고 출근하던 평범한 회사원이었는데,
당뇨 진단을 받고 난 뒤부터는 ‘혈당 올리지 않는 국 종류’가 제 인생의 화두가 되어버렸습니다.
말하자면, 제 식탁이 바뀌면서 인생이 조금은 조용히, 그리고 확실하게 달라진 셈입니다.
첫 번째 기억, 밥상 앞에서 젓가락이 멈췄던 날
그날 아침도 평소처럼 아내가 끓여준 된장국이 식탁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김이 살짝 피어오르는 국물 냄새에 입맛이 돌았지만, 젓가락이 도무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전날 밤 혈당계를 찍었을 때 178이라는 숫자가 눈에 꽂혔거든요.
그 숫자가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여보, 왜 안 먹어요?”
아내의 물음에 대답을 못 하고 그냥 국물만 바라봤습니다.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친 생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국 한 숟가락이 내 혈당을 더 올릴 수도 있겠구나.’
그날 이후부터 제 아침밥상은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국이 없으면 밥이 안 넘어갔는데,
그날부터는 오히려 국을 멀리하게 되더군요.
한 숟가락이 두려워졌다고 해야 할까요.
출근길의 피로와 회의실에서의 졸음
아침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출근하니 머리가 멍했습니다.
커피를 마셔도 집중이 안 되고, 오전 회의 때는 눈꺼풀이 천근만근 내려앉았습니다.
점심엔 동료들이 시킨 순두부찌개를 보며 “한 숟가락만…” 하고 젓가락을 들었죠.
매콤한 냄새에 이성을 잃었는데, 그게 문제였습니다.
오후 세 시쯤 눈이 침침해지고 손끝이 저릿해졌습니다.
퇴근 후 혈당을 재보니 213.
그 숫자를 보는 순간, 마치 누가 뒤통수를 친 것처럼 머리가 하얘졌습니다.
그날 밤,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당분간 국 좀 끊어야겠어요. 나 국물에 뭐가 들어있는지 이제 모르겠어요.”
‘국’이 이렇게 무서울 줄 몰랐던 날들
사실 그전까지 저는 단맛이 없으면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된장국이든 콩나물국이든, 설탕만 안 넣으면 문제없다고 믿었죠.
그런데 어느 날 인터넷에서 ‘된장, 간장에도 탄수화물이 있다’는 문장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진짜?” 하면서 냉장고 문을 열어 확인했더니, 된장 성분표에 탄수화물 5g… 그때 머리가 띵했습니다.
그래서 그날부터는 국 하나를 끓이더라도 일일이 성분을 찾아보고,
조리법을 달리해보는 실험이 시작됐습니다.
닭가슴살과 애호박만 넣고 끓이기도 하고,
표고버섯에 두부를 썰어 넣기도 했습니다.
소금은 티스푼 반, 간장은 아예 넣지 않았죠.
처음엔 밋밋해서 도저히 못 먹겠더군요.
아내가 “그게 뭐야, 이게 국이야?” 하며 웃었는데,
그 말이 서운하기보다 오히려 미안했습니다.
내 건강 하나 챙기겠다고 가족 입맛을 망쳐버린 기분이었어요.
실제로 시도했던 국 종류와 혈당 변화 기록
날짜 | 국 종류 | 주요 재료 구성 | 조리 방식 | 식후 2시간 혈당 수치 | 몸의 반응 및 느낌 | 개인 메모 |
---|---|---|---|---|---|---|
1일차 | 된장국 | 된장, 두부, 애호박, 소금 약간 | 전통 방식(된장 풀고 끓임) | 178mg/dL | 오후 피로감 심함, 손끝 저림 | 된장은 염분 외에도 탄수화물 함량이 높음 |
3일차 | 미역두부국 | 미역, 두부, 마늘 한 쪽 | 기름 없이 끓임 | 121mg/dL | 안정적, 포만감 적당 | 담백하면서 속이 편안함 |
5일차 | 소고기무국 | 무, 소고기, 대파, 간장 약간 | 무 볶은 뒤 끓임 | 192mg/dL | 피로감, 어지러움 | 무를 볶으면 당이 올라간다는 사실 확인 |
7일차 | 시금치들깨국 | 시금치, 들깨가루, 두부 | 약불에서 천천히 끓임 | 118mg/dL | 혈당 안정, 포만감 유지 | 조리 중 간을 최소화하니 맛이 은은 |
9일차 | 북엇국(맑은 버전) | 북어, 달걀 흰자, 대파 | 간장 생략, 소금만 사용 | 124mg/dL | 집중력 유지, 오후 졸음 없음 | 맑은 국물일수록 안정적 수치 보임 |
시행착오 속에서 배운 진짜 변화
3일, 5일, 1주일이 지나자 이상한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처음엔 그 밋밋한 국이 물처럼 느껴졌는데,
어느 순간 재료 본연의 맛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표고버섯의 향, 애호박의 달큰한 여운이 입안에 남더군요.
몸도 조금씩 가벼워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손발 저림이 줄고, 회사에서도 덜 피곤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진짜 ‘혈당 올리지 않는 국 종류’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탄수화물 적은 국’이 아니라, 제 몸이 반응하지 않는 국이 어떤 건지 직접 기록했죠.
메모장에는 이런 글귀들이 빼곡했습니다.
-
미역두부국: 안정적, 아침 혈당 117
-
소고기무국: 혈당 급상승, 오후 피로감 심함
-
시금치들깨국: 포만감 좋음, 혈당 122
-
북엇국(맑은 버전): 괜찮음, 간장 빼면 안정
이걸 몇 달간 기록하면서 신기한 걸 알게 됐습니다.
재료보다 조리법이 훨씬 중요하다는 거죠.
같은 무라도 볶으면 혈당이 오르고, 그냥 끓이면 괜찮았습니다.
간장 한 숟가락이 당뇨 환자에게는 설탕 한 스푼과 다를 게 없더군요.
어느 날 깨달은 한 가지 진실
어느 주말, 아내가 “오늘은 몸에 좋은 국 끓였어요”라며 내놓은 국이 있었습니다.
표고버섯, 미역, 두부, 양파가 살짝 들어간 들깨국이었죠.
그날은 맛있게 두 그릇이나 먹었습니다.
저녁 혈당을 잴 때 긴장했는데, 숫자가 118이었습니다.
순간 벅찬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그날 밤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만든 이 국, 진짜 나한테 맞아요. 이게 바로 혈당 올리지 않는 국 종류인 것 같아요.”
아내는 웃으면서 “그럼 앞으로 그걸로 쭉 가요”라고 하더군요.
그날 이후로 우리 집 식탁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감자국 대신 시금치두부국, 김치찌개 대신 들깨미역국.
식탁이 조용해졌지만, 그 안엔 평화가 깃들었습니다.
내 몸이 국 한 숟가락으로 알려준 신호
그때부터는 식탁이 제 건강의 거울이 되었습니다.
몸이 피곤하면 국물이 짜게 느껴졌고, 혈당이 안정되면 밍밍한 맛이 오히려 좋게 느껴졌습니다.
한동안은 ‘왜 이런 사소한 변화가 내 삶을 이렇게 바꾸나’ 싶었는데,
지금은 그 이유를 확실히 압니다.
‘국’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내 몸의 대화였던 겁니다.
퇴근 후 피곤한 날에도 저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냄비 뚜껑을 열어봅니다.
“오늘은 뭐야?”
“들깨버섯국이에요. 간은 아주 약하게 했어요.”
그 대답이 들릴 때마다 마음이 놓입니다.
이젠 밥보다 국에 더 마음이 갑니다.
한 숟가락을 천천히 떠서 입에 넣으면,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 듭니다.
실패담도 기록해야 성장한다
물론 지금까지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한 번은 간장을 조금 넣어봤다가 다음 날 아침 혈당이 192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날은 손끝이 저릿하고, 머리가 띵했습니다.
그 경험 이후로 ‘한 숟가락 정도야 괜찮겠지’라는 생각은 완전히 버렸습니다.
당뇨라는 게 참 교묘하더군요.
한 번만 방심하면 숫자가 바로 반응했습니다.
그래서 전 국 하나를 끓일 때마다 재료를 기록합니다.
애호박 30g, 표고 2개, 두부 반 모, 들깨가루 1스푼, 소금 1g.
이렇게 적다 보니 어느새 제 몸에 맞는 공식이 생겼습니다.
요리책이 아니라 내 몸이 알려준 요리법이랄까요.
국 조리 시 개인 기록표와 조리 비율 메모
항목 | 세부 내용 | 실험 후 느낀 변화 | 개선 포인트 및 조리 팁 |
---|---|---|---|
애호박국 | 애호박 50g, 표고 1개, 소금 1g, 들기름 ½스푼 | 식후 혈당 119mg/dL, 포만감 좋음 | 들기름 사용 시 향이 살지만 과하면 칼로리 증가 |
표고버섯맑은국 | 표고 2개, 양파 30g, 두부 반 모, 소금 약간 | 혈당 안정, 오후 피로감 개선 | 양파의 단맛 조심, 오래 끓이면 당 증가 |
시금치두부국 | 시금치 한 줌, 두부 ⅓모, 들깨가루 1스푼 | 혈당 116mg/dL, 포만감 유지 | 시금치 데친 뒤 끓이면 쓴맛 줄고 안정적 |
북어맑은국 | 북어채 한 줌, 달걀 흰자, 마늘 약간 | 혈당 122mg/dL, 속 편함 | 간장 대신 소금만, 끓일 때 기름 금지 |
들깨미역국 | 마른 미역 3g, 두부 ⅓모, 들깨 1스푼 | 혈당 115mg/dL, 오후 집중력 향상 | 들깨 비율 높이면 포만감 증가, 나트륨 줄이기 유효 |
국 한 그릇이 만들어준 가족의 변화
요즘은 아내도 제 습관을 따라줍니다.
“오늘은 뭐 끓일까?”라는 질문이 아니라 “오늘은 혈당 안 오르는 거로 할까?”라고 묻습니다.
그 말이 참 고맙습니다.
이제는 아이들도 짜지 않게 먹는 법을 배웠고, 가족 전체의 식습관이 자연스럽게 변했습니다.
딸이 가끔 “아빠 국이 제일 맛있어”라며 두 그릇을 비우는 걸 보면 웃음이 나옵니다.
예전엔 몰랐어요. 내 건강 하나 챙기다 가족 건강까지 얻을 줄은요.
지금의 저는 국을 다르게 본다
이제 국은 단순히 ‘반찬’이 아니라 ‘하루의 상태를 점검하는 신호등’입니다.
몸이 안정된 날은 국물 맛이 부드럽게 느껴지고, 피곤한 날은 조금만 짜도 확 느껴집니다.
외식할 때도 자연스럽게 ‘맑은 국’을 찾게 됩니다.
된장찌개 대신 시금치국, 감자국 대신 미역두부국.
그 작은 선택 하나가 제 혈당을 안정시켜줍니다.
가끔 친구들이 묻습니다.
“그렇게까지 신경 써야 돼?”
그럴 때마다 웃으며 말합니다.
“그렇게 안 했을 땐 병원에 갔고,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돌아보면, 국이 내 마음을 고쳐줬다
예전엔 음식이 단순한 ‘먹거리’였는데, 이제는 ‘생활’이 됐습니다.
식탁 앞에서 멈춰 서던 그날의 불안함이 지금은 감사함으로 바뀌었습니다.
혈당이 안정되니 마음이 편해지고,
마음이 편해지니 하루하루가 덜 피곤해졌습니다.
아직 완벽한 식단은 아닙니다.
가끔 실수도 하고, 외식 자리에서 유혹을 이기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걸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저는 알고 있으니까요.
내 몸이 원하는 건 자극적인 맛이 아니라, 안정된 평온이라는 걸.
이제 제 하루는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따뜻한 들깨미역국 한 숟가락,
그리고 스스로에게 건네는 한마디.
“수고했어요, 오늘도 잘 버텼네요.”
혈당 올리지 않는 국 종류를 찾는 일은 결국 제 자신을 찾는 과정이었습니다.
건강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매일의 국 한 그릇 속에 있었습니다.
“삶을 바꾸는 건 거대한 결심이 아니라,
식탁 위의 한 그릇을 바꾸는 용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