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아무 생각 없이 라면을 끓였다
제가 라면을 마지막으로 참았던 게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라면은 제 인생에서 거의 소울푸드예요. 특히 비 오는 날, 퇴근 후 지친 날, 야식이 고플 때 라면 하나 끓이면 마음까지 편해지는 느낌이 있잖아요.
그런데 40대가 되니까 몸이 예전 같지 않더라고요. 체중도 예전보다 쉽게 늘고, 혈압이나 혈당 같은 수치도 신경 쓰이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 정기 건강검진에서 공복 혈당 수치가 경계선이라고 뜨는 거예요.
평소에 단 걸 많이 먹는 편도 아니고, 술도 자주 마시진 않았는데 ‘왜 혈당이?’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의사 선생님이 한 말이 아직도 생생해요. “평소 라면 같은 음식 자주 드세요?” 그 질문 한 마디에 머리를 딱 맞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시작하게 된 게 바로 ‘라면과 혈당’의 관계를 제 몸으로 직접 확인해보는 거였어요.
혈당 측정기를 구매하면서 본격 시작
일단 집에 혈당 측정기가 없어서 검색을 해봤어요. 생각보다 다양한 제품이 있더라고요. 저는 초보자니까 사용법이 간단하고 후기 괜찮은 제품 위주로 찾다가, 무난하게 많이들 사용하는 브랜드 제품으로 골랐어요.
배송받고 바로 다음 날부터 실험을 시작했어요. 공복 혈당을 먼저 체크하고, 라면 한 그릇을 먹은 뒤 30분, 1시간, 2시간 후 혈당을 측정해봤어요. 아무것도 안 먹고 측정한 공복 혈당은 96이었어요. 경계선 바로 아래 수준이었죠.
라면은 아주 일반적인 봉지라면 하나에 달걀 하나, 그리고 김치 조금만 곁들여 먹었어요. 면은 다 먹고 국물은 반쯤 남긴 상태였어요. 이 정도는 평소 야식으로 흔히 먹는 조합이잖아요.
라면 먹고 30분 뒤, 숫자에 깜짝 놀랐다
라면 먹고 30분 뒤 혈당을 재니까 155가 나왔어요. 순간 ‘이거 기계 고장 아니야?’ 싶을 정도로 높았어요. 참고로 당뇨 초기 기준이 식후 2시간 혈당이 140을 넘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전 겨우 라면 하나 먹었을 뿐인데 30분 만에 150을 훌쩍 넘은 거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때부터 ‘라면이 정말 혈당을 이렇게 빠르게 올리는구나’를 몸으로 체감하기 시작했죠.
1시간 후에는 137까지 내려갔고, 2시간 후에는 116 정도로 더 떨어지긴 했어요. 그래도 식후 1시간 기준으로 봤을 땐 제법 높은 수치였어요. 그냥 단순히 배가 부르고 나른한 정도가 아니라, 몸이 진짜 당 처리에 힘들어하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문제는 라면의 ‘조합’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 뒤로 한 2주 동안 라면을 다양한 방식으로 먹어보며 테스트해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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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만 먹기 vs 면+국물 다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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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추가 vs 달걀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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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를 함께 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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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말아먹기
이렇게 나눠서 실험해봤는데, 결과는 확실했어요. 국물을 많이 먹을수록, 밥까지 말아 먹을수록, 혈당 수치는 급격히 올랐어요.
반대로 면만 적당히 먹고, 채소를 듬뿍 넣고, 단백질(계란이나 두부 등)을 함께 먹으면 상대적으로 혈당이 덜 올랐어요.
그중 가장 괜찮았던 건, 양배추, 숙주 같은 채소를 넣고, 국물은 거의 남긴 라면이었어요. 이 조합에서는 식후 30분에도 혈당이 130을 넘지 않았고, 2시간 후엔 거의 공복 수준으로 돌아왔어요. 확실히 ‘어떻게 먹느냐’가 정말 중요하다는 걸 실감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면을 끊을 수는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실험을 해보면서도 라면을 완전히 끊는 건 못 하겠더라고요. 그 특유의 중독성 있는 맛, 짭짤한 국물, 쫄깃한 면발은 진짜 대체불가예요.
하지만 이제는 ‘무조건 먹고 싶은 대로’ 먹진 않아요. 예전엔 늦은 밤에도 아무렇지 않게 끓여 먹었는데,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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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점심이나 이른 저녁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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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은 거의 안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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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으로는 무조건 나물이나 채소 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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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을 다 먹지 않고 반만 남기기
이런 식으로 조절하면서 먹어요. 그러다 보니 예전처럼 식곤증도 줄고, 다음날 몸도 훨씬 가볍더라고요.
진짜 무서운 건 혈당이 아니라 ‘습관’이었다
혈당이라는 건 숫자에 불과할 수도 있어요. 문제는 그걸 계속해서 반복할 때 생기는 ‘생활 습관’이에요.
라면을 먹고 싶을 땐 그저 맛있는 걸 먹는 것뿐이지만, 그게 반복되면 몸에 계속해서 무리가 가는 거더라고요. 그리고 40대가 되니까 이런 게 진짜 피부로 느껴졌어요. 예전 같았으면 라면 두 개 먹고도 끄떡없었는데, 지금은 한 개만 먹어도 다음날까지 속이 불편하고 피곤한 느낌이 드니까요.
‘이제는 뭘 먹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먹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말을 실감했어요. 특히 혈당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더 무서운 것 같아요.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데, 안에서는 이미 문제가 시작됐을 수도 있으니까요.
지금은 이렇게 먹고 있어요
요즘은 라면이 먹고 싶을 때 이렇게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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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양을 평소보다 1.5배 정도 늘려서 면의 나트륨을 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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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주, 청경채, 양파 같은 채소를 듬뿍 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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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대신 두부를 반모 썰어 넣거나 닭가슴살을 곁들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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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은 반 이상 남기고, 밥은 절대 안 말아먹고
이렇게 하면 식후 혈당도 크게 오르지 않고, 포만감은 훨씬 오래가요.
라면을 완전히 끊지는 않았지만, 똑똑하게 먹으니까 몸도 덜 피곤하고, 스트레스도 덜해요. 아무리 몸 생각한다고 해도 먹고 싶은 거 다 참는 건 너무 고역이니까요.
마무리하며 드리고 싶은 말
‘라면 먹으면 혈당 오르지 않을까?’ 이런 걱정 저도 정말 많이 했어요. 그런데 막연히 불안해하기보다는, 진짜 한 번 직접 측정해보는 게 훨씬 도움이 되더라고요.
라면은 나쁜 음식이 아니에요. 다만, 우리가 어떻게 먹느냐가 문제일 뿐이에요. 제 경험이 그런 고민을 하고 계신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으면 해요.
한 줄 요약 팁
라면 먹고도 혈당 관리할 수 있어요, 방법만 잘 알면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