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끊는 게 더 어려운 당뇨 생활의 시작
저는 40대 중반, 라면 없인 못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라면은 제게 간식이자 위로였고, 야근 후 허기진 밤에도, 감기기운 도는 날에도 라면 한 그릇이면 세상이 다시 돌아가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건강검진에서 공복혈당이 높다고 들었을 땐 솔직히 그냥 흘려들었어요. ‘조금 조심하면 되겠지’ 싶었죠.
그렇게 1년을 넘겼는데, 자꾸 갈증이 심하고 체중은 조금씩 빠지고, 피곤함이 심해졌어요. 결국 병원에서 정식으로 당뇨 진단을 받았고, 그때부터 식단 조절이라는 큰 과제를 안게 됐습니다. 그중 제일 충격적인 건 라면을 끊으라는 말이었어요. 마음속으로 “내가 라면 없이는 못 산다고요…”라고 외쳤죠.
식단조절 첫 주, 라면 생각에 미치는 줄 알았어요
당뇨 진단 받고 첫 주는 정말 멘붕이었습니다. 병원에서 식단표를 받고 집에 오자마자 냉장고랑 찬장부터 싹 정리했어요. 과자, 음료수, 냉동만두, 그리고 라면까지… 다 정리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텅 빈 기분이 들더라고요. 특히 라면. 그걸 봉지째 쓰레기통에 버릴 땐 진짜 서운했어요.
첫 주는 식단표에 맞춰서 닭가슴살, 현미밥, 채소, 두부 위주의 식사를 했어요.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문제는 ‘욕구’였어요. 배는 불러도 무언가 자극적인 게 자꾸 땡기더라고요. 밤만 되면 ‘라면 하나만 딱 먹으면 진짜 기분 풀릴 텐데’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어요.
그래서 결국 참지 못하고, 라면을 한 개 끓였습니다. ‘한 번쯤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요. 근데 다음 날 혈당 체크해보니 평소보다 훨씬 높더라고요. 그때 진짜 후회가 밀려왔어요. ‘이렇게 계속 하면 정말 위험하겠구나’ 싶었어요.
무조건 끊는 게 아니라 방법을 찾자고 마음먹었어요
그렇게 라면 한 번 먹고 정신 차린 후, 제가 선택한 건 완전 포기가 아니라 ‘방법 찾기’였어요. 라면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성분과 조리 방식, 섭취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그래서 하나하나 바꿔보기로 했어요.
제일 먼저 바꾼 건 면이에요. 처음엔 곤약면을 써봤어요. 칼로리도 낮고 혈당도 잘 안 오르긴 했는데, 면이 라면답지 않게 탱글하지 않아서 처음엔 실망했어요. 그런데 조리법을 살짝 바꾸니까 훨씬 나아졌어요. 면을 끓는 물에 한번 데친 뒤에 다시 국물에 살짝만 넣으니 훨씬 라면스러워졌어요.
두 번째로 고민했던 건 국물이에요. 라면 스프가 당뇨에 제일 안 좋다는 말에, 직접 육수를 만들어 보기로 했어요. 다시마, 멸치, 양파, 마늘을 우려낸 국물에 저염 간장 조금, 고춧가루 살짝, 들기름 몇 방울 넣으니 제법 맛이 나더라고요. 처음엔 어색했지만 몇 번 해보니 이제는 익숙해졌어요.
마지막으로 토핑을 바꿨어요. 예전엔 소세지나 치즈를 올렸다면, 지금은 삶은 계란, 두부, 청경채, 숙주나물을 듬뿍 넣어요. 이렇게 하면 양도 많아지고 포만감도 오래가요. 진짜 중요한 건, 먹고 나서 혈당이 크게 안 오른다는 거예요.
혈당 체크와의 싸움에서 얻은 교훈
제가 당뇨 라면 레시피를 만들면서 가장 신경 쓴 건 ‘먹고 나서 혈당이 얼마나 오르느냐’였어요. 한동안은 라면 먹은 날은 꼭 식후 1시간, 2시간 후 혈당을 체크했어요. 처음엔 귀찮았지만, 그 덕분에 어떤 재료가 제 혈당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몸으로 체득하게 됐어요.
예를 들어 감자전분 면은 곤약면보다 훨씬 혈당이 많이 오르더라고요. 토마토를 조금 넣으면 포만감이 늘어나는 대신 혈당에는 거의 영향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그렇게 혈당 수치를 통해 얻은 경험이 지금은 큰 자산이 됐어요.
가족들도 같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가족들도 제가 만드는 당뇨식 라면을 보고 “에이 그게 무슨 라면이야”라며 고개를 저었어요. 남편은 혼자 몰래 진라면 끓여 먹고는 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몇 번 제 라면을 같이 먹어보더니, “이거 꽤 괜찮네?” 하면서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주말마다 가족 다 같이 당뇨 맞춤 라면을 먹어요. 저염간장 베이스 국물에 채소 듬뿍, 곤약면 넣고 계란 하나 톡 까 넣은 그 라면이 우리 집 주말 메뉴가 된 거예요. 제가 건강 지키려 만든 음식이 가족 전체의 식습관을 바꾸게 될 줄은 몰랐어요.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당당하게 라면 먹어요
이제는 ‘라면 끊은 사람’이 아니라 ‘라면 조절해서 즐기는 사람’이 됐어요. 일주일에 한 번, 제가 정한 레시피로 만들어 먹고, 그날은 탄수화물 섭취도 조절하고, 식후 운동도 조금 더 해요. 그러면 혈당도 안정적이고, 마음도 만족스럽습니다.
스트레스 안 받으면서 먹고 싶은 거 먹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행복이에요. ‘이건 먹으면 안 돼’라는 금지된 음식이 아니라, ‘어떻게 먹으면 좋을까’를 고민하는 방식이 저에게 훨씬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마무리하며, 당뇨에도 라면은 방법이 있어요
당뇨 진단 받고 처음엔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요. 좋아하던 음식을 못 먹는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큰 스트레스였거든요. 근데 지금은 확실히 말할 수 있어요. ‘방법은 있다’고요. 포기하지 않고 조절하는 방법을 찾으면, 좋아하던 음식도 충분히 누릴 수 있어요.
지금도 가끔 친구들이 라면 먹으러 가자고 하면 저만의 버전으로 만들어서 싸가거나, 아예 집에 초대해서 같이 먹어요. 그게 오히려 더 반응이 좋아서 요즘은 친구들 사이에서 ‘라면 연구가’로 불리기도 해요.
당뇨 라면 먹고 싶은 분께 드리는 한마디
끊지 말고 바꿔보세요. 포기 대신 조절이 정답이에요.
저처럼 라면 좋아하는 당뇨 환자분들, 분명 공감하실 거예요. 한 번 시도해보세요. 결과가 달라질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