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병원에서 마주한 숫자 하나
건강검진 결과지를 들고 병원을 나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던 날이 있었어요. 늘 그랬듯이 검진은 형식적인 통과의례라고 생각했는데, 그날은 조금 달랐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말씀하셨죠. “공복혈당 수치가 좀 높습니다. 당뇨 전단계에 해당돼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띵해졌습니다. ‘설마 내가?’ 평소 단것도 즐겨 먹지 않고, 밥도 남들보다 적게 먹는 편인데 말이에요. 막연히 당뇨는 나와는 거리가 먼 병이라고 생각해왔던 저였기에, 당황스러웠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내 핸드폰으로 ‘당뇨 전단계 관리 방법’을 검색했지만, 그 정보들이 나를 안심시켜주진 못했어요. ‘지금부터라도 안 늦었겠지’라는 마음은 있었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전혀 감이 없었거든요.
커피를 내려놓고 빈 자리를 바라보다가
가장 먼저 했던 건 아침마다 마시던 커피를 끊는 일이었습니다. 카페인도 혈당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을 어디서 들었는지, 정확한 이유는 몰라도 그날부터 커피 머신을 닦아 넣어버렸습니다. 텅 빈 주방 한켠이 왠지 더 허전하게 느껴졌어요.
커피 대신 따뜻한 물만 마시다 보니 입이 심심해졌고, 뭔가 대체할 만한 게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예전에 선물 받았던 녹차 티백이 떠올랐습니다. 잎차는 아니고, 티백이긴 했지만 그때는 그냥 뭔가를 마셔야겠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처음 마셨을 때는 솔직히 별 느낌이 없었습니다. 물맛과 다를 바 없었고, 입안에 남는 은은한 쓴맛이 어색하기만 했어요.
하루에 한 잔씩, 기대 없이 시작한 습관
아무런 기대도 없이, 그냥 ‘몸에 좋다니까’라는 마음으로 매일 한 잔씩 마시기 시작했어요. 그땐 매일 혈당을 재는 습관도 없었고, 식단 관리도 아주 적극적으로 하고 있던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무언가 하나라도 바꿔야 한다’는 다급한 마음이 저를 움직였던 것 같아요.
식사 후엔 가급적 산책을 나가려 했고, 저녁은 조금 덜어 먹었습니다. 단것은 아예 끊었고요. 변화는 눈에 띄게 나타나지 않았지만, 몸이 조금 가벼워졌다는 느낌은 들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정말 우연히 식후 혈당을 측정해봤는데 깜짝 놀랄 만한 수치가 나왔습니다. 예전엔 항상 150이 넘었는데, 그날은 120대였어요. 저는 무심코 중얼거렸습니다. “뭐야, 왜 이러지?”
무언가 달라진 순간들
그날 이후 제 생활엔 새로운 리듬이 생겼습니다. 식사 후 산책, 그리고 녹차 한 잔. 어떤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그게 나를 차분하게 만들어줬거든요. 그 전엔 밥만 먹고 나면 무조건 눕거나 소파에 앉아 TV를 봤는데, 이제는 몸이 먼저 움직이고 싶어졌어요. 찻잔을 손에 들고 있으면 마치 스스로를 토닥여주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사실 녹차가 혈당을 낮춘다는 이야기야 이미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지만, 제가 체감했던 가장 큰 변화는 ‘긴장이 풀렸다’는 점이었어요. 당뇨라는 말에 덜컥 겁먹었던 초반과 달리, 이제는 좀 여유가 생긴 거죠. 뭔가 하고 있으니까, 나도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그런 생각이 스스로를 위로해줬습니다.
욕심이 생길 때마다 넘어졌던 날들
사람이란 게 참 간사해서, 조금 나아지면 또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이제 괜찮겠지’ 싶어서 저녁에 떡볶이를 먹었다가 다음날 아침 혈당이 훅 튀었던 적도 있었고, 친구들과 모임에서 술 한 잔 마시고 나서 속이 뒤집히는 느낌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런 날엔 자책이 밀려왔고, ‘난 왜 이 모양일까’라는 생각에 괜히 마음이 퉁퉁 부어버렸죠.
녹차도 그럴 땐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저 조용히 잔 안에서 식어갈 뿐이었고요. 그렇다고 녹차를 원망한 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날일수록 녹차 한 잔이 더 절실했습니다.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붙잡을 수 있는 어떤 고요한 습관이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위안이었거든요.
녹차에 기대서 다시 중심을 잡다
결국 다시 돌아온 건, 아주 기본적인 생활습관들이었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먹고, 천천히 씹고, 식사 후엔 20분 정도 걷기. 그러고 나서 녹차를 마시며 한숨 돌리는 시간이 점점 익숙해졌습니다. 어느 순간부턴 그게 하나의 의식처럼 자리 잡았어요. 스마트폰도 내려놓고, 말도 줄이고, 녹차에 집중하는 시간. 딱 10분 정도였지만, 그게 제 하루를 붙잡아주는 핵심이었어요.
몸이 변했다기보다, 마음가짐이 변했습니다. 예전엔 혈당 수치에 너무 연연했어요. 수치가 좋으면 기분도 좋고, 안 좋으면 하루 종일 우울했죠.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좋으면 좋고, 나쁘면 원인을 돌아보면 되는 일. 오르내리는 수치에 일희일비하지 않게 된 건 아마 녹차 덕분일지도 모릅니다.
다시 봄이 오고, 습관은 이어진다
요즘은 날씨가 따뜻해져서 그런지, 녹차가 더 잘 넘어갑니다. 냉녹차도 종종 마시고, 티백 대신 잎차를 주문해서 다관에 우리기도 해요. 예전엔 ‘귀찮아서 어떻게 저걸 마셔’ 했던 내가, 지금은 다관에 물 온도까지 맞춰가며 찻잎을 던지고 있더라고요.
가족들도 처음엔 저를 이상하게 봤습니다. “뭘 그렇게 느긋하게 마셔?”라며 놀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내도 저랑 같이 녹차를 마시고 있어요. 아이는 아직은 맛이 없다며 도망가지만요. 차 한 잔으로 하루를 정리하는 게 이렇게 좋은 거구나, 이제야 알게 됐습니다.
아침 혈당과 식후 혈당의 변화, 그래프로 확인한 안정감
날짜 | 공복 혈당 (mg/dL) | 식후 2시간 혈당 (mg/dL) |
---|---|---|
3월 10일 | 106 | 158 |
3월 20일 | 101 | 144 |
3월 30일 | 97 | 132 |
4월 10일 | 95 | 124 |
4월 20일 | 93 | 119 |
4월 30일 | 91 | 115 |
내 일상 속에서 녹차가 차지한 시간표
시간대 | 녹차 섭취 여부 | 메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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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 O | 식후 30분 후, 따뜻하게 1잔 |
오후 3시 | O | 산책 후, 집중력 떨어질 때 1잔 |
저녁 이후 | X | 수면 방해 우려로 섭취하지 않음 |
당뇨 전단계 관리에 내가 시도했던 생활 루틴 TOP 3
항목 | 효과 체감 정도 | 유지 난이도 | 개인 평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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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후 산책 | ★★★★★ | ★★★ | 혈당 안정에 가장 효과적 |
하루 2잔 녹차 | ★★★★☆ | ★★ | 심리적 안정감 있음 |
식단 탄수화물 절반 줄이기 | ★★★★☆ | ★★★★ | 초기엔 힘들지만 효과 큼 |
지금도 마음속에서 되뇌는 한마디
당뇨 전단계를 진단받고 나서, 저는 수많은 검색어와 수많은 음식, 보조제, 루틴을 경험했습니다. 어떤 건 효과가 있었고, 어떤 건 오히려 독이 되었죠. 그 중에서 끝까지 남아 있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함께할 것 같은 건 딱 하나입니다. 따뜻한 녹차 한 잔.
제가 스스로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급하지 말자, 계속만 가자.” 수치가 한두 번 높게 나와도 너무 실망하지 않고, 조금 나아졌다고 방심하지 않게 되는 그 중심을 잡아주는 말입니다. 녹차 한 잔과 그 말 한마디가, 지금도 매일 아침 제 하루의 시작을 만들고 있어요.
다른 누군가에게도 그런 ‘하나’가 있다면, 그걸 절대 놓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에게 그게 녹차였던 것처럼, 당신에게도 무언가 조용히 중심을 잡아주는 존재가 꼭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점심을 마치고, 녹차를 우리는 물이 끓어오르고 있습니다. 김이 올라오는 주전자 앞에서 저는 또 생각합니다. “괜찮아, 천천히 가도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