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별거 아닌 그날의 시작
퇴근하고 집에 도착했는데, 왠지 모르게 입이 심심했어요. 평소라면 그냥 물 한 잔 마시고 참고 자버렸을 텐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속이 허하고 좀 출출하더라고요. 아, 그날 점심을 대충 때운 게 생각났어요. 김치찌개에 밥 두 숟갈 먹고 끝낸 게 다였죠. 회의가 많았던 날이라 정신없이 보냈거든요.
‘뭔가 달달한 게 당기는데… 이럴 땐 뭐 먹지?’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마침 눈에 띈 게 작은 밤고구마 몇 개였어요. 아내가 장 보면서 사다 놓은 거였죠. 그걸 보는 순간 이상하게 군고구마 냄새가 머릿속에 확 스며들었어요. 갑자기 어릴 적 기억까지 떠오르더라고요. 추운 겨울날, 아버지가 난로 위에 군고구마 올려주던 그때. 먹자마자 입천장 데이면서도 손에서 못 놓던 그 따뜻함.
근데 잠깐, 나 지금 이거 먹어도 괜찮은 거야?
달달한 고구마와 싸늘한 혈당기
전자레인지에 돌린 고구마 하나를 들고 앉았어요. 겉은 쪼글쪼글한데 안은 촉촉하고 노랗게 잘 익었더라고요. 입 안 가득 퍼지는 달콤함이 정말 행복했어요. 그 순간만큼은 당뇨라는 단어도, 혈당 걱정도 다 잊은 듯했어요. 한입, 두입… 어느새 한 개를 뚝딱 해치우고 말았죠.
그러고 나서야 정신이 들더라고요.
‘아, 나 뭐 한 거지…?’
갑자기 식은땀이 났어요. 그동안 식단도 조심하고, 정해진 시간에 맞춰 약도 잘 챙겨 먹으면서 관리를 해왔는데, 고구마 하나에 모든 걸 망쳐버린 기분이 들었어요. 그게 사실 별 거 아닐 수 있는데, 그땐 진짜 좀 무서웠어요. 혈당이 뛸까 봐, 다시 예전처럼 몸이 무거워질까 봐.
결국 1시간을 기다렸다가 혈당을 쟀죠. 결과는… 음, 조금 높아졌더라고요. 확 치솟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평소보단 분명 올라있었어요. 별거 아니라고 하기엔 애매한 숫자였고, 괜찮다고 넘기기엔 뭔가 찜찜했죠.
고구마 먹으면서 혈당 반응 살펴봤던 날들
| 날짜 | 먹은 고구마 형태 | 조리 방식 | 함께 먹은 음식 | 식후 1시간 혈당 변화 | 메모 |
|---|---|---|---|---|---|
| 첫날 | 밤고구마 1개 | 전자레인지 | 없음 | 약간 상승 (120 후반) | 너무 배고파서 그냥 먹었더니 바로 반응 옴 |
| 둘째 날 | 밤고구마 1개 | 물에 찜 | 없음 | 뚜렷하게 상승 (130 중반) | 더 단맛이 강하게 느껴졌음 |
| 셋째 날 | 밤고구마 반 개 | 쪄서 식힘 | 삶은 달걀 1개 | 거의 변화 없음 (110 초반) | 단백질 같이 먹은 게 도움 됨 |
| 넷째 날 | 밤고구마 반 개 | 식힌 후 냉장 | 견과류 한 줌 | 안정적 유지 (105 부근) | 포만감도 좋고 만족스러웠음 |
| 다섯째 날 | 자색고구마 반 개 | 찐 뒤 식힘 | 삶은 달걀 + 아몬드 | 거의 변화 없음 (100 전후) | 고구마 종류도 조금 영향 있는 듯 |
고구마를 포기할 순 없었어요
다음 날부터 저는 좀 진지해졌어요. 아니, 솔직히 말하면 오기가 생겼어요. ‘내가 고구마 하나도 못 먹는 몸이 된 건가’ 싶은 서운함 같은 거요. 진짜 너무하고 억울했어요. 그렇게 맛있고 건강하다고 알려진 고구마인데, 당뇨인 저한테는 금기식품처럼 느껴지는 게 참 아이러니했죠.
그래서 결심했어요. 내가 직접 실험해보자. 어떤 조건에서 먹었을 때 괜찮은지 찾아보자고요. 고구마를 완전히 끊을 게 아니라, 나한테 맞는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거예요.
첫날은 전자레인지에 돌려먹었던 방식 그대로 다시 해봤어요. 그리고 혈당 재보니 역시 조금 올랐고요. 둘째 날엔 물에 푹 찐 고구마를 먹었어요. 근데 그게 생각보다 더 당도가 높더라고요. 혈당도 전날보다 더 올라간 걸 보니, 찜이 생각보다 별로라는 걸 알게 됐죠. 헛웃음이 나왔어요.
‘야, 이건 완전 당폭탄이네. 먹고 좋다고 느낄수록 문제다 이건.’
터닝포인트는 ‘식히기’였어요
셋째 날부터는 아예 조리 방법을 바꿨어요. 고구마를 쪄서 완전히 식힌 뒤,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꺼내 먹어봤어요. 이건 뭐랄까… 차가운 군고구마 느낌이었달까요? 식감이 쫀쫀해지면서 당도가 덜 느껴졌어요. 맛은 조금 아쉬웠지만, 확실히 그날은 혈당이 눈에 띄게 덜 올랐어요.
알고 보니, 익힌 탄수화물을 식히면 ‘저항성 전분’이라는 형태로 바뀌는데, 이게 혈당을 덜 자극한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그냥 우연이라 생각했는데, 두세 번 반복하니까 확신이 들었어요. 식힌 고구마 반 개, 단백질 보충으로 삶은 달걀 하나, 견과류 한 줌 정도 곁들이면 거의 혈당이 안정됐어요.
그 조합을 찾은 날은 진짜 좀 기뻤어요. 별것도 아닌데 괜히 승리한 기분. 속으로 ‘됐다!’ 하고 외쳤죠.
지금의 나는, 고구마를 어떻게 대하냐면요
이젠 고구마를 먹기 전에 무조건 한 번 식혀요. 쪄서 바로 먹는 건 절대 안 해요. 양도 무조건 반 개. 많으면 반 개 반까지. 무조건 단백질이랑 같이 먹고요. 당일 활동량이 충분했는지도 고려해요.
회사에서 야근할 때도 고구마를 가져가요. 도시락통에 식힌 고구마 반 개 넣고, 삶은 달걀 하나랑 아몬드 몇 알 챙겨가죠. 그걸 늦은 시간에 허기질 때 먹으면 포만감도 충분하고 혈당도 괜찮아요. 예전 같으면 피자 한 조각, 컵라면 이런 걸로 때웠을 텐데, 지금은 제법 건강한 루틴이 생긴 거죠.
지금 제 당화혈색소는 5.9~6.2 사이로 안정됐고, 아침 공복 혈당도 95~105 사이에서 유지돼요. 예전엔 140 넘기기도 했던 사람이니까, 고구마 한 알 앞에서 벌벌 떨었던 그날이 생각나면 웃음도 나고 안쓰럽기도 해요.
고구마 하나로 알게 된 나만의 혈당 관리법
| 실험 포인트 | 처음 시도했던 방식 | 결과 반응 | 나중에 바꾼 방식 | 내 몸에 맞았던 이유 |
|---|---|---|---|---|
| 조리 온도 | 전자레인지로 뜨겁게 조리 | 혈당 상승이 눈에 띄었음 | 식혀서 먹기 | 저항성 전분이 생겨 흡수 지연됨 |
| 먹는 양 | 1개 통째로 먹음 | 포만감은 좋았지만 부담됨 | 반 개 이하로 줄임 | 적정량 유지에 도움됨 |
| 식사 구성 | 고구마 단독 섭취 | 혈당 급격히 반응 | 단백질과 같이 섭취 | 흡수 속도 조절에 효과 |
| 타이밍 | 공복 상태에서 섭취 | 배는 채워지지만 불안감 큼 | 활동 후 간식으로 섭취 | 에너지 보충도 되고 안정적임 |
| 심리적 불안 | 자책, 불안감 강함 | 스트레스로 이어짐 | 조절 가능한 식단으로 인식 | 심리적 안정감도 올라감 |
돌아보면, 당뇨는 제게 ‘방법’을 가르쳐줬어요
고구마는 결국 나쁜 게 아니었어요. 내가 어떻게 다루느냐, 어떻게 먹느냐가 문제였어요. 어릴 적부터 익숙했던 음식이라 애착도 있었고, 그걸 버리는 게 아니라 조절하는 법을 배운 게 제겐 더 큰 의미였어요.
물론 아직도 가끔은 유혹이 생겨요. 아내가 에어프라이어에 바삭하게 구운 고구마 내올 땐 침이 돌죠. 그럴 땐 그냥 냄새만 맡고, 제 양만 딱 덜어내요. 예전엔 왜 나만 못 먹지, 왜 나만 조심해야 하지… 이런 생각에 괜히 예민해졌었는데, 지금은 조금 달라졌어요.
‘조절은 불행이 아니라 자유다.’
이 말이 지금의 저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문장이에요. 억지로 참고 사는 게 아니라, 알고 먹고 즐기고 누리는 거예요. 그걸 고구마 하나가 가르쳐줬다고 하면 웃기겠지만… 진짜예요.
마지막으로, 그날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은 한마디
“겁먹지 말고, 너답게 확인해봐.”
당뇨 진단 받고 나서 처음 뭘 먹을 때마다 망설였어요. 음식 하나에 예민해지고, 실수하면 자책하고. 근데 그런 시간이 반복되다 보니 알겠더라고요. 중요한 건 실수가 아니라, 그걸 어떻게 정리하고 다음에 어떻게 할지를 아는 거라는 걸요.
고구마 하나 때문에 그렇게 고민했던 날,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어요. 그 선택 덕분에 제 식단은 더 나아졌고, 제 삶도 훨씬 유연해졌어요. 이제는 고구마를 보며 겁내지 않아요. 오히려 고마운 존재죠. 제 혈당 관리 여정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질문 하나를 던져줬으니까요.
지금도 주말 저녁이면 조용히 고구마 한 개 쪄서 식히고, 조심스레 꺼내 먹는 시간이 있어요. 그 시간만큼은 누구보다 저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마음이 편해져요. 그게 당뇨를 받아들이는 제 방식이에요.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