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결과 앞에서 얼어버린 나
회사에서 회의 중이었는데, 병원에서 온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휴가 쓰고 검진받았던 결과가 나왔다며, 간호사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묘하게 단호했어요. “혈당 수치가 조금 높아요. 병원에 다시 오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입 안이 바짝 마르고 머릿속이 멍해졌습니다. 순간 ‘설마 내가 당뇨?’란 생각이 스치면서도 현실감은 없었어요. 그냥 몸이 좀 피곤했던 거고, 스트레스 받았던 탓이라고 넘겼거든요.
막상 병원에 다시 가보니 결과는 예상보다 심각했습니다. HbA1c 수치가 기준을 넘어서 있었고, 의사는 조심스럽게 생활습관부터 바꿔보자고 하더군요. 당장 약은 권하지 않았지만, 식단, 운동, 체중 관리, 전부 손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날 이후부터 제 인생은 정말 달라졌어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무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뭐 하나 먹을 때마다 머릿속에 숫자가 떠오르기 시작했거든요. ‘이거 혈당 올라가는 거 아니야?’ ‘지금 먹으면 안 되는 거 아냐?’
그 첫 타깃이 된 게 바로 계란이었습니다.
계란을 놓고 벌인 나 혼자만의 전쟁
당뇨 진단 받고 나서 제일 먼저 바꾼 건 아침 식사였습니다. 예전엔 바쁘다고 아무거나 때우거나, 식빵에 잼 바른 거 하나 들고 출근하곤 했는데요. 그날 이후부턴 아내가 챙겨주던 반숙 계란 두 개를 앞에 두고도 젓가락이 멈추더라고요.
머릿속에선 온갖 정보가 뒤섞여 있었습니다. ‘계란 노른자에 콜레스테롤 많다는데 이거 먹어도 되나?’ ‘단백질은 좋은데 지방은?’ 검색하면 할수록 더 혼란스러웠어요. 혈당엔 큰 영향 없다고 하는 글도 있었지만, 반대로 ‘계란 많이 먹으면 안 된다’는 주장도 꽤 많았거든요.
그래서 계란을 아예 빼보기로 했어요. 며칠은 토마토, 두부, 오트밀 이런 걸로 아침을 구성했죠. 그런데 진짜 배가 너무 금방 꺼졌어요. 10시쯤만 되면 머리가 띵하고 어질어질하더라고요. 식후 혈당은 괜찮은데, 그 뒤로 군것질 욕구가 폭발해서 오히려 점심 전에 커피랑 과자 한 봉지를 집어든 날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더 문제였어요.
당뇨 진단 후 계란을 먹기까지 마음의 변화 기록
시기 | 아침 식사 구성 | 계란 섭취 여부 | 당시 느낀 감정 | 메모 |
---|---|---|---|---|
진단 직후 첫 주 | 토마토, 두유, 오트밀 | ❌ 안 먹음 | 불안, 혼란, 모든 게 겁남 | 계란 노른자 콜레스테롤이 걱정되어 제외함 |
실수로 폭식한 다음 날 | 닭가슴살 샐러드, 고구마 | ❌ 안 먹음 | 자책, 무기력 | 오히려 포만감 부족으로 폭식 유발됨 |
선배와 대화 후 | 삶은 계란 1개, 토마토, 밥 반 공기 | ✅ 반숙 1개 | 조심스러움, 희망 | 반응을 보기 위해 소량부터 다시 시작 |
기록 시작 후 2주차 | 반숙 계란 1~2개, 채소, 현미밥 | ✅ 꾸준히 섭취 | 안정감, 포만감, 식욕 조절됨 | 수치 안정 확인 후 자신감 생김 |
현재 | 계란 2개(반숙/프라이), 밥 반 공기, 채소 | ✅ 매일 먹음 | 평온, 일상으로 자리 잡음 | 계란이 하루의 기본 식단이 됨 |
다이어트 한다고 폭망했던 그날
가장 기억나는 건 어느 금요일 아침이었어요. 출근 준비하다가 체중계 올라갔는데, 1.2kg가 빠졌더라고요. 괜히 우쭐해진 채로 아침을 더 대충 먹었어요. 삶은 토마토랑 두유 한 컵. 점심도 닭가슴살 샐러드. 그런데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눈앞이 핑 돌았어요.
주방으로 비틀비틀 가서 뭐라도 먹으려다가, 순간 이성이 끊겼는지 냉장고에 있던 식은 피자 조각 3개랑 콜라를 들이켜버렸어요. 그땐 진짜 정신이 없었어요. 뭘 먹고 있는지도 모르게 허겁지겁 먹었고, 다 먹고 나서 현타가 왔죠. ‘내가 뭘 한 거지?’ 손에 들고 있던 피자 상자 위에 반쯤 녹은 치즈가 묻어 있었는데, 그걸 보는데 괜히 눈물이 났어요.
이건 식단 조절이 아니라, 자학이었어요.
계란이 돌아온 계기
그런 실수를 몇 번 겪고 나니 혼자선 방법을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회사 선배 한 분께 조심스레 물어봤어요. 그분은 이미 몇 년째 당뇨 관리 중이신데, 항상 식단을 깔끔하게 챙기시거든요.
“선배님, 계란… 드세요?”
선배가 빵 터지면서 말씀하시더라고요. “너도 이제 계란 겁나냐? 나도 예전에 하루에 4개씩 먹다가 병원 갔다가 한동안 노른자도 못 봤어. 근데 말이야, 하루에 한두 개 먹는다고 큰일 안 나. 오히려 단백질은 채소보다 계란이 훨씬 효율 좋아.”
그날부터 계란을 다시 먹기 시작했어요. 물론 처음엔 불안했어요. 하루에 하나. 노른자는 반쯤만 먹고, 삶은 걸로만. 그렇게 조심스럽게 다시 식탁 위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수첩을 꺼내서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아침에 계란 먹고, 점심엔 밥 반 공기, 저녁엔 닭가슴살. 식후 2시간 혈당 체크. 그렇게 쭉 기록하다 보니 어느 순간 패턴이 보였어요. 계란이 혈당을 올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식욕을 잡아줘서 하루 전체의 혈당 흐름을 안정시켜준다는 걸 느꼈어요.
계란이 말없이 도와주던 시간들
지금은 하루에 계란을 1~2개씩 먹습니다. 반숙으로 먹을 때도 있고, 샐러드에 올려 먹기도 해요. 가끔은 계란찜으로 부드럽게 만들어서 속 편한 날 먹기도 하고요.
혈당 기록도 꾸준히 하고 있는데요, 계란 먹은 날이 오히려 점심 때 폭식 욕구가 줄어드는 걸 확실히 느낍니다. 단백질이 포만감을 오래 유지해주니까 간식 생각이 덜 나요.
물론 처음부터 이런 결론에 도달한 건 아니었어요. 계란 하나 앞에서 멈칫했던 제 모습, 피자 3조각 먹고 후회하던 밤, 아무것도 모르겠던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저도 있는 거겠죠.
계란을 다시 먹기 시작한 후 혈당 수치와 변화 기록
날짜 | 아침 식사 내용 | 계란 섭취 | 식후 2시간 혈당(mg/dL) | 식욕 상태 | 느낀 점 요약 |
---|---|---|---|---|---|
1주차 수요일 | 계란 1개 + 두부 + 밥 반 공기 | ✅ 있음 | 142 | 중간 정도 | 식욕은 있었지만 폭식 없이 유지됨 |
1주차 금요일 | 계란 2개 + 현미밥 + 채소볶음 | ✅ 있음 | 135 | 낮음 | 포만감 오래가고 군것질 욕구 적었음 |
2주차 월요일 | 계란 1개 + 오트밀 + 바나나 1/2 | ✅ 있음 | 127 | 낮음 | 수치도 안정, 기분도 안정 |
2주차 금요일 | 계란 2개 + 밥 + 김 + 나물 | ✅ 있음 | 132 | 거의 없음 | 혈당 기복 줄고 집중력도 좋아짐 |
3주차 수요일 | 계란 2개 + 샐러드 + 고구마 | ✅ 있음 | 124 | 매우 낮음 | 군것질 생각 안 남. 계란이 큰 역할 한 듯 |
무조건 피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었다
당뇨 진단 이후로 많은 걸 포기했어요. 단 것도 줄이고, 밀가루 음식도 조심하고, 음주도 끊고. 근데 모든 걸 다 포기하면 삶이 너무 삭막해져요. 아침에 계란 하나라도 편안하게 먹을 수 있어야 ‘아, 나도 사람답게 사는구나’ 싶은 거예요.
몸도 챙겨야 하지만, 마음도 챙겨야 하잖아요. 당뇨는 단순히 수치의 문제가 아니라, 일상 전체와 감정까지 영향을 주는 병이더라고요.
마음에 남은 말 한마디
요즘은 계란을 삶으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내 몸은 내가 알아가면 된다.”
처음엔 계란 하나도 무서웠던 제가, 이제는 당당하게 삶고, 굽고,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별거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에겐 그 계란 하나가 ‘포기하지 말자’는 의지였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오늘 아침도 계란 두 개를 삶았습니다. 노른자는 완벽한 반숙. 그 위에 소금 한 꼬집.
입에 넣는 순간, 제 몸도 마음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듯했어요.
그리고 그 조용한 응원이, 오늘 하루도 건강하게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되었습니다.